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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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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중국이야기 <15> 대리상의 리더급 이 부총경리
글쓴이 신윤창(세라젬화장품 중국청도법인장)    [2016년5월호]    조회 : 4,519

이 상무가 퇴사하고 나서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우선 영업으로 편중된 인력을 각자의 능력과 역할에 따라 다른 부서로 재배치하였으며, 새로 채용한 장 상무를 중심으로 영업 조직과 정책을 새로 수립하게 했다.
장 상무는 나보다 화장품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다. 화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부족했고, 전략적인 마인드도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중국에서 화장품 영업을 수년 간 해 봤다는 경험이었다. 그는 중국의 화장품 시장 현황을 잘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과거 거래했던 대리상들 정보와 인맥, 그리고 그들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나는 장 상무의 말을 철저하게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부합하듯 과거 이 상무와는 달리 입사하자마자 한 달 만에 새로운 영업 정책과 새로 거래할 대리상 계획을 제출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제출한 영업 정책이 너무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렇게 사업해 봤자 남는 돈은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큰 적자가 날 처지였다. 그의 정책을 검토하고 나서 나는 장 상무 방을 노크했다.
“장 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시간 되세요?”
“네, 어서 오십시오.”
장 상무는 특유의 말꼬리를 길게 끄는 말투로 나를 맞이했다.
“제가 이 서류들을 검토했는데, 너무 퍼 주는 것 같아요. 아무리 따져 봐도 이익이 나지 않아요. 아니, 처음이니까 투자 개념으로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본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이러다 나중에 과연 이익을 회복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하, 그렇죠? 처음엔 다 그렇습니다. 이건 새로 거래하는 신규 대리상들에게 육 개월만 특별 지원하는 거니까, 육 개월이 지나고 지속적으로 거래가 되면 이익 구조로 전환될 것입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에서도 그랬어요. 거기가 지금 이익 많이 나는 거 잘 아시죠?”
“잘 알죠. 그래도 거긴 대기업 자금이 투자된 곳이고, 우리는 자금 여력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렇게 퍼붓다가는 얼마 안 되어서 자금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어요.”
“신 상무님, 우리가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어떤 대리상과도 거래를 하지 못합니다. 일단 거래를 트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요? 우린 지금 대리상이 아무도 없어요.”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는 민 대표도 나를 총경리라고 호칭하는데도 불구하고 장 상무는 항상 나를 신 상무라고 호칭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위가 아니라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호칭으로 부각시키려고 했다. 나는 이런 호칭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말로만 총경리로서 업무적으로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민 대표가 과거 이 상무 때처럼 장 상무를 내게서 분리해서 본인이 직접 결재하는 라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이처럼 찾아와서 얘기하는 것은 그 어떤 통제력도 없이 의논하고 합의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과거 이 상무 때 실패한 경험이, 전혀 학습되어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되는 상황이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우리의 지원율이 경쟁사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요. 장 상무님이 직접 만든 비교표를 보세요.”
“네, 압니다. 제가 만든 표 아닙니까?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대리상 입장에서는 이미 다른 회사랑 거래를 하고 있어요. 실적도 좋아요. 예를 들어 지금 오십만 위안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지원 받는 게 삼 퍼센트라고 하면 만오천 위안이죠? 그런데 우리 회사와 거래하면서 과연 오십만 위안 팔 수 있을까요? 브랜드도 없고 게다가 제품 수도 별로 없고, 잘해봐야 이십오만 위안 팔았다고 합시다. 그 대리상이 평소 벌던 만오천 위안을 받으려면 우린 육 퍼센트를 지원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떤 대리상들이 우리와 거래하겠습니까?”
장 상무의 말은 대리상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영업을 했다가는 곰은 재주만 부리고 돈은 주인이 차지한다고, 회사는 실속이 없고 중국인 대리상들만 배부르게 해주는 꼴이 될 것 같은데, 누가 이런 영업을 하려 하겠는가? 철저하게 대리상의 입장인 장 상무와 회사를 경영하는 내 입장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긴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데올로기가 다른 정치인들 마냥 결론을 좁힐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장 상무와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주제가 초점을 벗어나 산으로 갔다 강으로 갔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야기의 초점으로 돌아가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주제는 또 다시 중국인이 어떻고 대리상이 어떻고 하며 주저리주저리 옮겨 갔다. 나는 더 이상 얘기해 봤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론을 짓듯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결국 회사는 이윤이 남아야 계속 돌아가는 곳입니다. 당장 이익이 안 나더라도 육 개월 후 과연 회복 가능한지는 제가 더 자세히 시뮬레이션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장 상무님도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돈을 줄이면서 그들에게 달리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예를 들어 우리와 거래하면 더 넓은 지역을 확보할 수 있어서, 비록 제품은 적더라도 여러 곳에 판매를 할 수 있으니 매출이 증가하지 않겠습니까? 좀 더 고민해 주세요.”
나의 완곡한 부탁에 장 상무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다시 검토하죠.”
하지만 장 상무의 대답은 인사치레에 불과했다. 나중에 장 상무는 나와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민 대표에게 결재를 받아 왔다. 나는 깜짝 놀라 바로 민 대표에게 갔다.
“사장님, 장 상무가 수립한 영업 정책은 제가 검토해 봤지만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합의도 없이 사인을 하면 어떡하십니까?”
“신총도 검토했다고 하던데?”
“네. 저도 검토했죠. 그런데 이건 너무 비용이 커서 이리 집행했다가는 회사가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됐어. 장 상무에게 다 들었어. 나도 다 알아. 내가 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아나? 척하면 땡감이지.”
“사장님, 저는 이렇게 많이 퍼주는 영업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신총, 우리는 텔레비전 광고를 안 하니까, 광고비 여기다 쓴다고 생각하면 되지. 지금은 일단 대리상을 잡아와서 거래를 트는 게 더 중요해. 이 상무 때문에 우리가 낭비한 시간이 얼마인가? 장 상무가 저장성 항저우의 대리상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니, 이번엔 어찌하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지금은 이익보다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할 때야. 알겠나?”
“그럼 그렇게 하시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마지못해 품의서의 합의란에 사인을 했다. 그래 어쩌면 그들 말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고, 중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의 말을 따라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 처리하는 장 상무의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 구조가 문제 아닌가.

장 상무는 전 직장에서 거래했던 저장 성 항저우의 대리상을 10월에 접촉하여 11월부터 우리와 거래를 트기로 했다. 초창기 한국에서 샘플로 들여왔던 희란을 제시했더니, 소득수준이 높은 항저우의 대리상은 Made in Korea의 고품질 희란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무엇보다도 나와 갈등을 일으켰던 무리한 대리상 지원정책에 대해서 특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런 조건에서 그녀가 우리를 마다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단지 큰 문제라 하면, 희란을 제외하고는 당장 판매할 이렇다 할 다른 품목이 없는 상황에서, 11월에 나올 메이디커가 자리를 채워 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추려면 제품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저 우리에겐 처치 곤란한 리화 화장품 재고만 짐 더미처럼 남아 있어, 이제는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비용을 들여 폐기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리화 제품들을 모두 폐기하는 것 보다, 일단 쓸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판촉용으로 무료로 주었는데, 항저우 대리상은 마지못해 받아 판촉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항저우 창고에 쓰레기처럼 쌓여 불만만 고조되자, 결국 모두 폐기해야만 했었다. 참으로 수억 원의 거액을 주고 쓰레기 같은 제품을 매입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예정보다 5개월이나 늦어졌지만 희란의 위생 허가를 10월 중에 받아 정식 수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내가 중국에서 메이디커를 개발하는 동안 한국 법인 허 상무에게 개발하도록 했던 미백화장품 에델린의 개발이 완료되어 11월부터는 회사의 주요 브랜드 라인에 편입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중국으로 오기 전에 전문 홍보 대행사와 계약을 맺고 희란 브랜드를 한국의 유명 연예인에게 협찬하도록 했었다. 많은 유명 스타들이 희란을 들고 찍은 사진들과 함께, 한국에서 성공한 마케터로서 유명한 민 대표의 높은 인지도를 전면에 내세운 스타 마케팅을 해야만, 아직 인지도가 낮은 우리 회사의 경우엔 중국인 고객들에게 신뢰성을 크게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홍보자료를 민대표와 인기스타들에게 집중했다.
민 대표가 장 상무와 함께 직접 항저우로 출장을 갔을 때, 민 대표는 대리상들에게 여느 인기스타가 부럽지 않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업 설명회는 크게 성공적이었다. 그런 모든 노력들이 하나로 집대성된 결과 항저우 대리상은 첫 달에 소비자가 기준으로 칠십만 위안(약 126백만 원)을 매입했다. 이는 지금까지 안후이 성에서 이 상무가 사 개월간 거둔 실적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한 명의 대리상이 이런 성과를 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로, 오자마자 장 상무는 민 대표에게 능력을 높이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비록 몸은 칭다오에 떨어져 있었어도 문자 메시지를 받은 나와 송 부장은 환호성을 지르며 크게 기뻐하기도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음 달 항저우 대리상은 기대했던 백만 위안을 달성하지 못하고 팔십만 위안(약 1억 4천만 원)에 머무르더니,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매출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항저우는 워낙 물가도 높고 고급 소비 시장으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각축장이 된지도 오래였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희란이 틈새를 끼어들기는 쉽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초기 전략 그대로 대도시가 아닌 2~3선급의 소도시로 먼저 진입해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회사가 있는 칭다오가 속한 산둥성의 도시들은 가장 가깝기도 하면서 경쟁사에서도 매출 비중이 높고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좋아서, 가장 먼저 공략해야 할 지역이기도 했다.
장 상무 또한 나와 생각이 같았다. 그는 산둥성에서 대리상을 할 만한 마땅한 사람을 찾기 위해 전 직장에서 가져온 대리상 리스트를 뒤적였다. 그러다 한때 화장품 대리상으로 함께 일하다가 지금은 건강식품 판매 대리상을 하고 있는 이 이사가 생각났다. 이 이사는 중국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으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마인드로 맨땅에 헤딩하듯 화장품 판매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산둥성의 옌타이(烟台, 연태)에서 건강식품 판매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사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장 상무는 이 이사야말로 화장품 회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물로서 적격이라고 생각하고는, 얼른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웨이, 니하오.(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전화기 넘어 이 이사의 낭랑하고도 힘찬 목소리가 들려오자, 장 상무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이 이사, 요즘 어때요? 그쪽에서 영업하기는 괜찮은가요?”
“예전 같지 않아요. 돈도 잘 못 벌고. 그러다 보니 하부 대리상들도 자꾸 떠나서 지금은 많이 힘들어요.”
“아무래도 건강식품 팔기가 화장품보다 못하죠. 그럼 화장품 다시 해보지 않겠어요? 내가 돈 많이 벌게 해줄 테니.”
“싫어요. 지금 좀 힘들어도, 이미 그만 둔 회사랑은 더 이상하기가 싫어요. 다시는 보기 싫은 사람도 있고.”
이 이사가 회사를 떠난 이유는 자기 위로 있던 유 부총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 이사는 실적이 우수하여 부총으로 승진하기를 바랐지만, 그럴 경우 조직을 따로 분리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유 부총은 그녀의 승진을 받아들여 주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사사건건 방해해서 결국 회사를 떠나도록 만들었다.
“아니, 나도 지금 회사를 옮겼어요. 지금은 칭다오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우리 새로운 회사에서 예전처럼 같이 한번 일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내가 만나고 싶은데, 한번 방문해도 될까요?”
“네?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보고 싶네요. 내 동생인 이 부장도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다 같이 봐요. 나는 지금 옌타이에서 일하고 있어요.”
“좋습니다. 옌타이면 칭다오랑 가까우니 내가 내일 바로 갈게요. 내일 열두 시 어떻습니까? 점심식사 같이하며 얘기하죠. 주소 좀 문자로 남겨 줘요.”
“하우더. 밍티엔지엔.(좋습니다. 내일 봐요.)”

다음 날 장 상무는 통역을 대동하고 직접 차를 몰고 옌타이로 갔다. 그는 기본적인 일상회화 정도는 중국어가 가능했으나, 업무적으로 깊은 대화 때는 자칫 어설프게 이해하고 잘못 거래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통역을 대동했다. 거의 일 년 만에 이 씨 자매를 만나자, 장 상무는 특유의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그들을 반겼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는, 근처 중국식 전통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회사 및 제품 소개와 함께 구체적인 거래 조건을 나누었다.
이미 나는 장 상무에게 우리 회사의 거래 조건이라면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과거에 비해 수입이 절반도 미치지 못했던 이 이사에게 이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짐짓 어렵다는 듯 난색을 표했다.
“장 상무님, 상품 수가 너무 부족합니다. 이 정도 제품으론 일백만 위안도 팔기 힘들어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신제품이 개발되고 있으니, 영업하는 동안 구색은 다 맞춰질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영업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출장비도 많이 들고, 이런 조건으로 이 상품들만 가지고 우리는 남는 게 없어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기본 마진 이외에 초기 육 개월간 특별 장려금을 주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많이 주는 데 없습니다. 자세히 보세요.”
이 이사는 잠시 뜸을 들이며 고민하는 척하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장려금은 매출 실적에 따라 나중에 주는 것인데, 그럼 첫 달만이라도 실적과 상관없이 미리 주세요. 그 돈으로 일단 영업을 시작하고, 실적은 반드시 맞추겠습니다. 그리고 옌타이에 사무실도 마련해주세요. 사무실이 있어야 뭐든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마땅한 사무실을 찾아 내게 따로 연락을 주시고, 내년 1월부터 당장 시작하는 걸로 하죠.”
장 상무는 영업 시작이 중요하다 생각하여 그녀의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주었다. 지금 당장은 이 이사와 이 부장과 몇 안 되는 대리상들과 시작하지만, 이후 그녀들이 끼칠 파급 효과는 대단하리란 것을 장 상무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회사가 만든 대리상 영업 조직은 방문판매와 매장판매가 결합된 상당히 독특한 모습이다. 한국에서 소위 다단계 방판이라고 하는 소비자에게 직접 방문하여 제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을 여러 단계의 구성원이 나눠먹는 방식(이하 직판)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중국의 법을 피하기 위해, 이는 내외부적인 환경 여건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다.
과거 중국의 시장 개방 후 직판 사업은 중국의 싸고 거대한 인적자원을 내세워 우후죽순처럼 급성장을 하였으나, 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피라미드 영업이 난립했을 때처럼 중국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2005년부터 다단계를 법으로 금지시키며 1단계 형태의 직판만 엄격한 규정에 의해 허가를 해주고 있다. 직판허가는 이미 기존에 허가를 받은 회사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받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그 조건이 어려웠지만, 설령 자격 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정부와의 특별한 꽌시가 있지 않으면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 암웨이, 메리케이, 에이본 같은 회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중국에 진출해서 전국적인 직판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중국 화장품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그 후로 진출한 한국의 화장품 회사들은 직판허가를 엄두도 내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20년 만에 처음으로 허가를 받은 A사의 경우도 전국적인 직판이 아니라 상하이 한 지역에만 해당되는 허가만 받아서, 직판을 통해 매출의 한계를 뛰어 넘기 어려운 지경이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유명 브랜드도 아닌 우리 회사는 대대적인 텔레비전 광고와 유통 투자를 하지 않고는 중국에서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적은 자본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처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화장품 회사들의 사업 모델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답안지 보고 시험 보는 것과 다름없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보이지 않는 이면엔 엄청나게 어려운 점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장 상무의 역할이 중요했다.
장 상무가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는 처음에 작은 매장에 제품을 입점시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었지만, 거대한 땅 중국 방방곡곡의 매장과 거래하기 위해서 수많은 영업사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욱이 매출 실적이 고정적이지 않은 그들을 한국처럼 모두 회사 정직원으로 채용하기에는 고정비 부담이 너무 컸으며, 중국의 노동계약법이 상당히 노동자 측에 유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정직원으로 채용했다가 나중에 생길 노사분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험부담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영업을 대리해주는 대리상이란 이름으로 그들에게 판매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직판이 아니라서 별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실적 마감 후 대리상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은 자칫 다단계성 직판체제로 오인될 수 있는 맹점도 있었다.
나는 이런 문제를 사전에 간파하여, 타사의 장점을 받아들이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우리 회사에 접목했다. 판매실적 정산 후 월급처럼 주는 수당을, 회사가 일일이 지급하지 않고 대리상의 마진에 포함시켜 제공한 것이다. 한마디로 대리상들의 수당은 회사랑 상관없으니, 기준에 따라 알아서 나누어 먹으라는 것이다. 단점으론 돈줄을 회사가 쥐고 있지 않게 되어 대리상들을 회사에서 컨트롤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 상무는 영업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반대하였으나, 회사가 법적으로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나의 뜻을 이번만은 꺾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몇 년 후에 장 상무가 있었던 경쟁사는 법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존 방식을 고수하다가, 나중에 수당 지급 문제가 빌미가 되어 다단계 문제로 중국 정부의 조사를 받은 후, 조직이 와해되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처럼 한때 큰 매출을 올렸던 회사도 법적으로 깔끔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사라질 수가 있는 곳이 중국이다.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고, 예에 어긋나는 일은 행동하지 말라는 말처럼,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중국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해가 지나 1월이 되었다. 장 상무의 예측대로 이 이사라는 한 명의 리더급 대리상의 출현은 인적관계를 타고 흘러, 점차 거대한 대리상 조직으로 변모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이사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뛰어난 영업력을 보여줬다. 과거 알고 지냈던 대리상들과 연락하여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도록 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어쩌면 영업력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사람에 대한 꽌시가 좋다고나 할까? 영업하는 사람의 꽌시라는 게 결국 영업력이요, 하부 조직에 대한 리더십과도 연결되는 것이니, 그녀가 그동안 살아온 영업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과거 흩어졌던 자신의 대리상 구성원들을 하나둘씩 불러 모으더니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처음엔 산둥성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자신이 새로 데려온 중간 관리자급 대리상들에게 서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듯 명확히 구역을 안배하고 산둥성 영업에 집중하였다. 그 후 산둥성을 중심으로 북쪽은 허베이성(하북성), 남쪽은 장쑤성(강소성), 동쪽은 랴오닝성(요녕성), 서쪽은 산시성(산서성)으로 영업의 파이프라인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자 매출은 급신장하였고, 그녀는 부총경리로 초특급 승진하며 자연스럽게 그녀가 데려온 관리자급들도 이사로 승진하게 되어, 더욱 더 영업조직과 매출 확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 부총이 허베이성, 장쑤성, 랴오닝성, 산시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자, 나는 한편으로 좋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부총 한 사람에게 너무 큰 지역을 주는 것이 회사의 입장에서 옳은 일인지, 아니면 나중에 나쁜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였지만, 나와 장 상무는 확실히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결국 나는 장 상무가 이 부총 한 명에게만 공백시장 개발에 대한 권한을 함부로 남발하는 것이 걱정스러워 장 상무에게 우려를 표하며 말했다.
“장 상무님, 이 부총과의 계약에도 영업 권한은 산둥성 하나에만 국한되어 있고 사장님께도 그렇게 결재 받았는데, 어느새 소리 소문도 없이 신규 지역으로 네 개의 성을 이 부총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이 부총 한 사람이 이 넓은 중국 땅을 다 차지할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는 달리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당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도 지금 이 부총이 탄력을 받아 열심히 할 때 우리도 편승해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매출만 잘된다고 좋은 건 아니죠. 한 조직에 너무 의존하면 리스크를 분산할 수가 없습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장 상무님은 지금도 주식투자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전 재산을 한 회사에만 투자하나요?”
“주식하는 것과 이것이 뭐가 같습니까? 영업은 좀 다르죠. 앞으로 실적이 더 좋아져서 이 부총 밑의 이사들이 부총으로 승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국의 각 지역들도 부총들마다 골고루 나누어지면서 이 부총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권한도 분산될 것이니, 걱정 마세요.”
“그러나 만약 더 좋은 조건의 경쟁자가 이 부총을 큰돈으로 유혹하면, 우리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과연 우리 회사의 조건을 뛰어 넘을 회사가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순간 나는 장 상무도 우리가 지금 너무도 많은 돈을 퍼주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월 매출이 일천만 위안을 돌파했지만 여전히 회사는 적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세히 따지면 회사의 적자 폭은 더 커진 반면, 대리상들은 더욱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리스크를 떠나, 이 부총이 1퍼센트씩 가져가는 것만 해도 너무 큰 금액이 아닙니까? 만약 장 상무님이 처음 이 부총을 데려왔듯이 허베이성이나 장쑤성에서 직접 다른 사람을 새로 뽑아 이 부총과 분리했다면, 그 실적에 대해 이 부총에게 주는 비용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 일을 장 상무님이 직접 하지 않고 전부 이 부총에게만 맡기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신규 대리상들의 실적 또한 그녀의 성과에 포함되어, 나중에 가서 이 부총은 가만히 있어도 거액의 돈을 벌게 되는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됩니다. 가뜩이나 변동비성 지원 금액이 너무 많아서, 많이 팔수록 회사가 더 적자인 상황에 이건 너무 큰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신 상무님이 몰라서 그러시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난 번 말했듯이 곧 신규 개발 장려금이 끝나면 수익성도 개선될 것입니다. 또한 이 부총도 열심히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고, 그녀가 번 수당의 일부를 판촉으로 쓰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래야 다른 대리상들이 그녀를 따르게 되는 것이죠. 앞으로 좀 더 지켜보면 잘 알게 될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좀 기다려 보세요.”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단, 장 상무님도 이 부총에게만 맡기지 말고, 일 년 전 처음 왔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직접 뛰면서 거래선을 개척해 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 부총에게 추가로 영역을 확대해주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네, 그럼요.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말로만 떠드는 장 상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이 부총에게 계속 여러 지역을 맡기어, 이후 섬서성, 허난성 등으로 더욱 확장하게 된 그녀의 입김은 위험할 정도로 더욱 커져만 갔다. 이 부총은 회사와의 관계에서 불리한 점이 있으면, 매출을 의도적으로 안 하겠다는 협박성 말을 하거나, 때로는 하부 대리상들이 단합하여 실제로 입금을 다 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장하여 회사를 곤란하게도 했다. 그러자 계약의 갑과 을의 관계에서 회사는 더 이상 갑이 아닌 게 되었다. 권력의 헤게모니는 전국 대리상 조직을 한손에 꽉 쥔 이 부총이 가져가게 되어, 우리는 이 부총이 칼자루를 쥐고 흔들 때마다 퍼렇게 선 날에도 차마 손을 놓지 못한 채 피를 절절 흘리며 쫓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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