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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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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페미니즘 <60>꽃보다 언니
글쓴이 이윤애(전북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    [2016년5월호]    조회 : 4,700

4·13 총선을 앞두고 연일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옆에 누가 있으면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투표당일 대한민국 지도가 호남을 제외하고 붉은 색으로 칠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뭔가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름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땅을 잠시 떠나기로 했다.
그 동안 지역여성운동에 매진하면서 소진되고 상처받은 그래서 서로가 위로해주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던 다섯 여자들이 공모했다. 가볍게 떠나서 감동받고 돌아오자며 작당했던 것이다. 어디로 가지? 한 여자가 후쿠오카가 좋다고 말한다. 그럼 언제? 4월 13일. 왜냐면 그날 6시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시간에 심장이 멎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시작된 다섯 여자의 작당은 ‘꽃보다 언니, fun-fun한 후쿠오카’로 작명하고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동선을 짜고 이동방법을 모색하고 뭘 보고 뭘 먹을 것인지 등. 이런 준비는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는 내가 하기로 했다. 여행가이드북을 구매하고 시간이 있을 때면 인터넷을 검색하면 정보는 무수히 많았다.
다섯 여자들의 특성과 선호를 고려하여 숙소도 잡고 대략적인 동선들을 중심으로 계획표를 만들어 사전 검수도 했다. 이미 계획표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 꼼꼼한 성격의 한 여자에게 공금을 맡기고 환전하도록 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당일 모두 사전투표를 하고 모였다. 비가 내린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섯 여자는 빗길을 달려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목감기 기운이 있었던 나는 여행기간 더 심해질까봐 병원에 들러 약처방도 받았다. 감기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목상태가 악화되는 것이었다. 왜냐면 다섯 여자들이 모이면 수다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여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수다는 시작되어 달리는 차속에서도 쉼이 없다. 빗길에 나뒹굴어진 자동차들을 보며 운전대를 잡은 내 손에서는 땀이 나지만 수다는 계속되었다. 여성주의를 민주주의를 총선을 후보자를 정당을... 수다의 주제는 막힘이 없다. 나는 여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첫 번째 행선지 유후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버스요금은 왕복권과 2인권, 4인권 등이 있어 할인받을 수 있었다. 산큐패스라는 3일용 버스티켓도 있었으나 우리 일행 동선에서는 별로 이득이 없어 포기했다. 또 한 구간 쯤은 기차도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산큐패스를 구입했었으나 고민하다 과감히 환불했다.
우리는 예정했던 버스보다 빠른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유후인에 도착했다. 안내소에서 마을지도를 얻어 예약한 료칸에 도착했다. 출발전날 메일을 보내 추가 옵션을 주문했지만 최소 이틀 전 예약사항만 체크된단다. 조식타임이나 온천타임 등을 다시 예약하고 겨우 체크인을 마쳤다.
다섯 여자 중에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현지에서 영어가 잘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 언어가 걱정되긴 했다. 나는 떠나기 전 일본어 딱 다섯 마디.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섯 명’이라는 일본어만 머릿속에 입력해 갔다. 간단한 영어와 그것도 소통이 어려우면 스마트폰 꺼내서 번역앱에 입력하면 만사소통이다. 이토록 소통이 쉽건만 대한민국에는 소통이 안되는 딱 한 분이 계시다.
유후인은 일본여성들도 선호하는 여행지로서 긴린코호수와 아기자기한 유노츠보거리 그리고 온천으로 유명하다. 우리들의 이곳 여행코드명은 ‘유유자적 유후인’으로 정하고 2박3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개별온천탕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행복감. 꽃이 피어 수채화 같은 온 산과 반짝거리는 긴린코호수 수면에 비친 모습들의 아름다움에 반한 다섯 여자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호수를 바라보며 고즈넉한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먹고 있는 다섯 여자를 상상해보라.
회계를 담당한 여자가 전 날 쓰고 남은 공금에서 용돈도 나눠줬다. 우리는 유노츠보거리의 미술관과 아기자기한 공방들을 둘러보며 각자 선물도 구입했다. 예쁘고 단아한 골목길과 지천에 피어있는 꽃들과 집집에 널려 있는 빨래까지도 그림같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기휴일로 첫 날 예정했던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둘째 날 다시 찾아간 넨린의 저녁식사는 아름다웠다. 특별히 꽃바구니도시락은 다섯 여자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유후인에서 2박3일을 고집한 이유는 단 한가지 긴린코호수의 아침 낮 오후의 모습을 온전히 보고자 함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눈을 비비며 긴린코로 향했다. 가는 길의 새벽향기가 싱그럽다. 호수 위로 짙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몽환적이었다. 그 위를 부지런한 오리 한 쌍이 유유히 헤엄쳐간다. 먼 산이 물위에 그림자로 비친다. 다섯 여자는 넋을 잃고 오도카니 모여앉아 호수면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유후인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는 가까이 위치한 벳푸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유후산을 넘어 돌아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벳푸여행의 꽃 지옥온천순례를 위해 벳푸역 코인라커에 짐을 넣어 놓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칸나와로 향했다.
국가지정명소로 등록되어 있는 지옥온천들을 돌아보고 내려와 체험공방에서 음식을 선택하고 주문하고 찜가마에 넣어 온전히 셀프로 점심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주문자판기 옆이나 가마찜솥 옆 등 곳곳에 지역노인들이 있어 도움과 안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셀프체험을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온천족욕도 무료로 할 수 있다.
벳푸로 돌아와 우리는 하카타행 기차를 탔다. 하카타역 근처 숙소도 쉽게 찾았다. 모츠나베로 유명한 나카스강변의 맛집을 찾아갔다. 강변의 야경을 상상하며 맛집을 수소문했건만 그냥 또랑이었다. 음식은 입에 살살 녹았다. 음식맛으로만 기억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캐널시티에서 커피한잔 하다가 야간 분수쇼까지 덤으로 얻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하카타역 코인라커에 짐을 보관하고 주변을 배회했다. 하카타시티는 물론이고 우연히 만나는 장미페스티벌, 지워지는 볼펜을 사기위해 텐진까지 걸어서 나카스강을 건너는 수고로움도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장인의 우엉튀김우동을 먹기 위해 다이치노우동가게에 들어가 줄서서 기다리다 식사의 정점을 찍었다. 아름답고 소중하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지진체험을 빼놓을 수 없다. 구마모토현 지진의 중심은 아니고 살짝 비켜 있었으나 생생한 체험이었다. 여행 둘째 날 저녁 온천욕을 하는데 뭔가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고 멀미를 하는 듯이 속이 메스꺼웠다. 강도 6.5의 첫 번째 지진이었다.
다음날 7.3강도의 두 번째 지진은 하카타에서 맞았다. 우리 숙소는 호텔 12층이었는데 갑자기 건물이 시계추가 거꾸로 진자운동을 하는 듯 흔들렸다. 너무 무서워 한손은 침대끝을 붙잡고 한 손은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몸을 서로 지탱했다. 의외로 호텔은 너무 조용하다. 창밖을 내다봐도 도시가 조용하다. 난 너무 무서워 쇼크로 몸에 경직이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옆 친구가 차분하게 몸을 이완시켜 경직을 풀어주었다.
다음날 공항에서 알아버린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묵었던 호텔에서는 대피소동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우리숙소는 주로 일본인들이 많았고 지진이 일상이 되다보니 이 사람들은 별 일 아닌 것으로 여겨 조용했던 것이다.
우리가 떠나왔던 유후인은 들어갔던 길과 나왔던 길이 끊기고 묵었던 료칸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마음에 담고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발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마을이 파괴되었을까봐 안타깝다. 두 저녁을 쉬었던 료칸에 메일을 보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할 수 있는 말은 "God bless you!"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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