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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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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사는문화/백세시대삶과문학/노년의 고부(姑婦) 모시기― 김원일, 「미망(未忘」
글쓴이 장미영(전주대 교수)    [2016년5월호]    조회 : 998

노년의 고부(姑婦) 모시기  
― 김원일, 「미망(未忘」

1. 한 사람이 세상에 오고 간다는 것

소설가 김원일의 단편소설 「미망(未忘)」은 시인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사람이 ‘온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또한 어마어마한 일이다.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도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망(未忘)」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작중 화자인 손자의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간 내내 고모 댁에 머무르던 할머니는 고모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손자인 화자의 집에 와서 살게 되었고, 울산에서 장사하던 어머니는 작은아들이 해외로 2년간 떠나있게 되자 큰아들인 화자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문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녀들의 과거를 떨치지 못하고, 아니 오히려 고스란히 과거를 짊어진 채 손자/아들 집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작품 제목인 ‘미망(未忘)’이라는 말처럼 과거의 일을 잊지 못하는 어머니와 할머니는 다섯 달 동안 여섯 번을 싸울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상태에서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했다.  
‘나’의 할머니는 아들 둘을 잃고 세 번째 얻은 아들, 즉 화자의 아버지 되는 아들을 평생토록 무작정 기다려야하는 참담한 세월을 보냈다. 한때 부모의 기쁨이었던 영특한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좋은 직장 마다하고 야학당을 개설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해 왜경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고 이어 해방 후에는 좌익 활동을 하다 순경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한편 ‘나’의 어머니는 혼인하기 일주일 전 갑작스레 시아버지가 돌아가지고, 혼인 후에는 남편의 좌익 활동으로 지서 순경에게 연행되는 일이 잦아지는 모진 경험을 했다. 이때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버려두고 당신 딸인 고모네 집에 가서 돌아오질 않다가 아버지가 경찰에 자수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좌익 활동이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그러한 고통을 함께하지 않고 외면했던 세월에 대해 원망을 품게 되었고 시간이 지난 후, 화자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할머니에 대한 일방적 험담으로 한풀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갈등은 할머니의 임종으로 끝을 맺게 되는데, 할머니의 임종 직전, 어머니는 그토록 미워하던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간갈치를 사오는 행위를 통해 할머니에 대한 연민을 표면화하고 있다. 결국 할머니는 며느리가 사온 간갈치를 드시지 못하고 한 많은 일생을 마치셨다. 화자는 할머니 유품에서 나온 아버지의 보도연맹 가입증을 보며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을 지탱하게 한 것이 아들에 대한 잊지 못함(미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사십여 년을 차고 다녔던 보도연맹 가입증은 그 아들이 좌익활동을 자수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할머니는 그 가입증을 통해 아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 생전에 어머니는 일방적으로 할머니를 험담했고 할머니는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고부간 싸움이 시작되면 할머니는 진지를 드시지 않았고 어머니는 할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저녁을 드시기 전에 두 분이 또 한바탕 했어요. 그래서 할머닌 저녁 진지도 안 드셨지 뭐예요. 어젯밤 업무수당 명세서를 작성하느라고 야근을 마치고 열시가 넘어 귀가한 나에게 아내가 대문을 열어 주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할머니와 한방 잠자리를 하지 않기 위해 요 이불을 마루로 내어 와 따로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가 울산의 점포를 정리하고 서울의 우리 집으로 합가를 한 것이 다섯 달째인데, 그새 할머니와의 말다툼은 벌써 여섯 번째였다. 만일 앞으로 한 달 동안 두 분이 별 마찰 없이 지낸다 해도 한 달에 한 번꼴은 다툼이 벌어진 셈이었다. 말다툼이라면 서로 삿대질을 하며 맞대거리를 해야 마땅하나 두 분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했다. 어머니 쪽에서 먼저 발작적으로 할머니의 마땅치 못한 행동거지를 두고 험구를 했고, 그러면 할머니는 조개가 입을 다물듯 침묵으로 그 따가운 수모를 묵묵히 견디어 냈으니, 일방적이라 말해야 옳았다. 제 분에 못 이긴 어머니가 새삼스레 옛 모화 시절의 케케묵은 과거까지 꺼내어 짧게는 십여 분, 길게는 삼십여 분을 할머니와 아버지까지 싸잡아 닦달을 놓다 제풀에 지쳐 입을 다물 때까지 할머니는 자리를 뜨지 않고 돌아앉아 그 말을 죄 새겨들으며 담배질로 응어리진 한을 눌러 삭였다. 그런데 그쯤에서 할머니가 어머니를 피해 장소를 옮기면 되련만, 할머니는 꾸중 듣는 아이처럼 청승스레 그 험담을 다 들으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입을 닫은 뒤면 반드시 혼자말처럼, 그러나 분명히 어머니도 듣게끔 한마디 말대꾸를 담배 연기 속에 풀어 날리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니 말이야 다 맞지러. 축구등신 같은 이 늙어 빠진 시에미가 잘한 기 머가 있노. 자슥을 잘 나았나, 나온 자슥을 잘 키았나. 아무것도 잘한 기 없지러. 하늘 보기가 부끄러버 거리구신이 돼서 객사를 하든가, 약을 묵고 죽든가 해야지러. 이짓 저짓 다 몬 하모 우짜겠노, 호야네한테라도 가야지. 그노무 차를 또 우째 탈꼬.” 호야네란 불광동 고모댁을 이르는 말이었고, 차 타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심한 멀미가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그 푸념은 꺼지려는 어머니의 울화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어머니가 발끈하여 악을 쓰게 마련이었다. “맨날 천날 죽는다 카면서 와 몬 죽을꼬. 쪽박 들고 동냥질 댕기모 똑 맞을 그 잘사는 딸네 집에 갈라 카모 어서 가소. 평생 딸네 집 뒤만 봐줬는데도 딸네는 이날 이때까지 와 제 밑도 몬 닦는고.”
이제 고모까지 들고 나서는 어머니의 빈정거림이었다. 두 분이 그렇게 한바탕 말다툼을 치르고 나면 사나흘 동안 집안은 한겨울 냉방 같은 분위기가 되곤 했다. 방 두 칸에, 세 평 남짓한 마루 한 칸이 고작인 아래채 전세에 두 분이 마치 딴 살림을 하듯 냉전 체제로 들어가면 한방을 쓰는 두 분의 불편한 잠자리에 내가 무슨 화해의 특사나 되듯 부득불 이불과 베개를 옮겨 부엌방으로 건너가야 했고, 어머니는 못 이긴 체 우리 내외 방에서 잠을 잤다.
-김원일, 「미망」 『김원일 문순태 송기원』, 창비, 2013, 42~43쪽.

위의 인용문처럼 할머니와 어머니를 다투게 한 대상이자 한 맺힘의 본질이었던 화자의 아버지는 수재 소리를 듣던 영특한 인물이었으나 농민운동과 좌익 활동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가족을 돌보기는커녕 가족의 인생을 슬픔과 분노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아버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주기를 평생토록 기다렸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역사적 무게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세상에 왔다 간다는 것은 하나의 개체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시대와 역사가 결합된 사회의 일원으로서 변화의 격랑을 만들고 지속적인 잔영을 남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유교 경전의 하나인 <주역>에서는 모든 존재가 거대한 관계망을 이루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았던가.

2. 인륜지대사

작가는 가족사를 되짚어, 혼인을 통해 낳고 낳아 고통스럽고 불안한 대를 이어가는 것이 사람살이임을 보여준다. 미망(未忘)」의 주요인물인 할머니는 하서라는 갯마을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여동생 셋과 함께 힘들게 살다가 열아홉 되던 해에 모화 땅에서 상처한 서른한 살 먹은 늙은 홀아비였던 할아버지와 혼인하게 된다.  

할머니 연세 올해로 여든여덟이니 십이 년만 더 살면 한 세기를 사시는 셈이었다. 할머니의 친정은 모화에서 삼대봉이란 해발 육백 미터 남짓한 산허리를 휘어 돌아 동으로 늘어진 시오릿길을 걸으면 당도하는 하서라는 갯마을이었다. 하서는 방어진과 감포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면소재지로 백여 호가 넘는 대촌이지만,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은 가구수 삼십 호 정도의 작은 어촌이었다. 나는 여지껏 할머니의 고향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어머니도, 할머니가 하서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 할머니가 당신의 친정 이야기나 부모 동기간을 입에 올려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도 없었다. 할머니는 하서에 살았던 자신의 처녀 시절을 철저히 함구하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어머니와 고모로부터 흘려 들은 것이 전부였다. 할머니 열아홉 살 때 모화땅의 상처한 홀애비에게 처녀시집을 왔다. 할아버지는 손 귀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겨우 호구나 면하는 가난한 소작농이었고, 할머니와 혼례를 치렀을 때는 시쳇말로 이가 서 말이나 된다는 나이 서른하나의 늙은 홀애비였다. 할아버지는 죽은 전처와 사이에 자식이 없었는데 뜨내기 방물장수의 소개로 할머니에게 새장가를 들었던 것이다. 들은 바로 증조할아버지는 모화당 천석꾼인 최부자네 종이었는데 당시의 개화바람을 타고 인간해방을 맞아 그 최부자네 논 다섯 마지기와 밭 두 두렁을 배내기로 타내 딴 살림을 나오신 모양이었다. “들은 이바구로 니 할메 친정은 친가 외가를 따져 사촌조차 없는 사고무친이었던 기라, 어느 과수가 딸 둘을 키았는데 울도 없는 두 칸 초가에 삽짝 앞만 나서모 사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였단다. 니 할메 친정애비는 배를 타다가 젊어 물귀신이 됐고 친정에미가 청상에 과수가 되어 딸 둘을 키우며 미역을 따다 호구나 이었는데, 바다라 카모 하도 원한에 사무쳐 뱃놈한테는 절대로 딸을 안 줄라고 벼르다가 우째 모화땅 니 할베와 혼삿말이 있었던 기라. 지금도 보모 얼굴이 갸름하고 이마가 반듯한 기 니 할메가 처녀 적은 꽤나 새첩었을(예뻤을) 끼라, 니 할메가 시집을 와서는 딱 두 분 친정걸음을 했다는데 한 분은 동상이 시집간다는 기별이 와서 갔고, 한 분은 두 딸을 다 출가시키고 가랑잎맨쿠로 홀홀이 살던 친정엄마가 쉰도 몬 되어 죽었다는 기별이 와서 하서로 갔단다. 그것도 다 들은 이바구고, 내가 시집을 와서는 니 할메가 한 분도 친정 가는 걸 몬 봤다. 친정 이바구를 입에 담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며 저 동쪽 하늘을 보다가 혼자 눈물지우는 모습이사 수천 분도 더 봤지러. 죽은 부모나 감포 쪽으로 시집가 소식 없는 동상 생각이 나서 그랬겠지. 아이들이 우찌다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라는 노래라도 부르모 그기 듣기 싫은지 귀를 막곤 했지러.” 어머니가 내게 들려준 말이었다. “추석이나 설날이나 제사 지낼 때 니 할메 하는 짓 니도 봤제? 제사를 다 지내모 꼭 따로 밥 두 그릇을 새로 떠서 제삿상을 문 쪽으로 반쯤 돌리 놓고 할메 혼자 두 분 절하는 거. 그거는 제상에 밥 올리놓을 손을 몬 두고 죽은 친정 부모님 제사를 니 할메가 대신 지내 주는 기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김원일, 「미망」 『김원일 문순태 송기원』, 창비, 2013, 54~56쪽.

위의 인용문처럼 사람은 탄생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대를 이어 DNA를 전달하면서 위 세대와 다음 세대 간에 긴밀한 관련을 맺어 운명의 제약을 극복하려는 창조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기 복제를 통해 무한한 존재를 만들어가는 혼인을 ‘인륜지대사’라 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좌익 활동에 경도된 아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혼인을 시켰다. 그로 인해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또 다음 세대를 키워냈다.

어머니는 젖먹이 어린 나를 안고 밤이면 밤마다 공포에 떨며 뜬눈으로 새벽을 맞기가 일쑤였다.
“……내가 니를 업고 호계 시누이 집으로 가서 울며불며 얼매나 애원을 했겠노. 지발 집에 오셔서 내하고 같이 계시자꼬 말이다. 그래도 씨가 믹히 드가야지. 순사가 어데 거게만 가나, 여게가 성모 여동상 집이라고 여게도 자주 온다며 한사코 안 온다 카더라. 그때는 니 할메가 귀신한테 씨있는지 죽자살자 내 얼굴을 안 볼라 안 카나. 말 같은 며느리가 이 집 귀신 댈라고 간택되는 바람에 멀쩡한 서방 죽고 자슥까지도 좌익에 미친갱이가 됐다고 동네방네 나발을 불고 댕기니, 시집 잘몬 온 죄밖에 없는 내 팔자가 와 그래 서럽던공…… 그러던 차에 머신 법이 새로 생겨 자수를 하지 않는 빨갱이는 몽지리 잡아 영창에 처넣고, 그 중 악질은 총살을 시킨다 카니 그때서야 니 애비가 어디선가 모화로 돌아와 지서에 자수를 한 기라. 보도연맹인강 먼강, 거게 가입을 해서 겨우 살길을 찾았지러. 그라니까 시어미가 그제서야 딸네 집을 떠나 우리집으로 옮겨 오더라. 참말로 사람도 좁쌀만한데, 하는 짓까지 얼매나 얄밉던지…… 그런데 알고 보니까 니 애비가 자수를 하고도 지서 몰래 그 짓은 계속했던 모양이라. 야학당 한다고 시아비가 안 묵고 안 쓰고 장만한 논마지기를 쪼개서 팔아묵더니, 육이오가 날 때까지 지 에미 몰래 나머지 논마지기를 또 몽땅 다 팔아 뿐 기라. 그라고 육이오가 터지자, 니 애비가 일 주일 만에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져 뿌린 기 아니겠나. 미친늠으 서방, 그놈을 믿고 자슥 둘까지 싸질러 가며 살은 내가 축구등신이지. 니 할메는 지금도 이북 어디에 자슥이 살아 있겠거니 하지만서도 내가 생각기로는 버얼써 뒈졌다. 홀에미한테 불효하고 처자슥 버리고 도망간 놈이 땅에 두 발 딛고 살 수가 있겠나. 그렇게 니 애비가 없어지고 나자, 하메 소식이 올까올까 하고 기다리는 기 두 달, 시에미마저 보따리를 싸가지고 또 호계 딸네 집으로 가뿌린께 내가 무슨 청승으로 빈집을 지키겠노. 남은 논마지기도 없응께 하루 두 끼 묵기도 힘이 들어, 내 젖은 안 나오니까 니 동상은 비실비실 말라 다 죽어 가제, 밤이모 순사들이 또 찾아오제…… 그래서 내가 모진 결심을 안 했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인께, 이 언슨시럽은(지긋지긋한) 모화땅을 떠나자고 말이다. 너거 두 성제간을 걸리고 업고, 걷고 걸어 울산으로 나갈 때, 들판에 곡식이 자알 익었더라. 가랑잎은 날리고, 곧 엄동은 닥치는데 낯설고 물설은 울산으로 나오자 눈앞이 캄캄하더라. 딸린 새끼만 없었더라 캐도 그때 나는 목을 매달아 죽었을 끼다. 그래, 울산에서 내가 너거들 데불고 추위는 닥치는데 남의 처마 밑이나 역 대합실이나 헛간이나, 비 피하고 바람 막을 데모 가리지 않고 너거 성제간을 양쪽 가슴에 꼭 붙안고 그 체온으로 겨울을 넘길 시절에 처음 이 에미가 한 짓이 먼 줄 아나? 바로 걸뱅이 짓이었다. 깡통을 들고 퉁퉁 부은 손발로 남의집이며 미군부대며 문전걸식을 했니라. 몸에 이가 수백 마리나 끓고, 열흘이고 보름이고 낯짝도 못 씻은 얼굴에 입성이라고는 살을 가렸응께 너거 성제간 꼴은 말하모 머하겠노. 그때 니가 다섯 살, 니 동생이 두 살이었다. 울산서 호계 사람도 만났응께 니 할메한테 내 소식도 전해졌으련만 메루치(멸치) 장사로 방 한 칸을 얻을 때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 오냐, 내가 이 두 자슥을 질질이 키아서 옛말하고 살 때, 내 괄세한 이노무 세상, 어데 두고 보자. 내가 무명지를 깨물어 나올 젖도 없는 쪼그라진 가슴팍에다 피로써 십자가를 그렸다. 지금도 보이제, 이 살점 날라간 손가락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밤, 나에게 처음으로 새 교복을 맞춰 주시고 어머니는 우리 형제간을 앉혀 놓고 이 말을 하시며 우셨다. 그 울음은 너무 절절하여 나도 아우도 따라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 세 모자는 울음으로 밤을 밝혔다. 그 거칠고, 어떤 면에서는 모질기까지 한 어머니를 내가 뜨겁게 이해하게 된 것이 그날 밤 이후였다. 우리 형제를 숯포대 매질로 키워 올 때도, 그 매가 서른둘에 청상이 되신 뒤 홀몸으로 세파를 이겨 온 분풀이와 설움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고 나는 순종으로써 달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김원일, 「미망」 『김원일 문순태 송기원』, 창비, 2013, 68~71쪽.

위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화자는 할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삶을 순종으로 받아들이면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설움을 포용한다. 손자 세대인 화자는 위 세대의 물리적 환경의 열악함과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위 세대의 고통을 감싸면서 그들의 삶을 배려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격체로 나아간다. 손자인 화자의 순종과 웃어른에 대한 극진한 보살핌은 결국 분풀이하기에 바빴던 어머니로 하여금 할머니에게 연민을 갖게 함으로써 화해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화자는 할머니, 어머니, 나에게 부정적으로만 각인되던 아버지가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 즉 화자는, 오늘날까지 할머니와 어머니를 버티게 한 중요한 존재로서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작가 김원일은 아버지의 좌익 활동으로 가족들이 고통 받는 현장을 체험했고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갈등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소설 속에서나마 화해시키고자 「미망(未忘」을 썼다고 밝혔다. 이처럼 작가는 인간의 가치와 존재 의의를 화해에 두고 이러한 가족사의 승화를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슬픈 상흔을 넘어서려는 모색으로 읽게 만든다. 가족 간의 왜곡된 평가와 뒤틀린 심성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동시에 이념 투쟁과 전쟁으로 얼룩진 고통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 강인한 생명력

화자는 어머니로부터 할머니의 죽음이 가까워 옴을 듣게 된다. 어머니는 냉담하게 말하면서도 말 뒤에 시름에 실린 눈길을 보이는가하면 죽기 전에 좋아하는 갈치 한번 드시라고 직접 산갈치 두 마리를 사오는 정성을 보인다.

“안 돌아가신다모 돈깨나 까묵게 생겼어. 아프다고 하도 소리치길래 듣기 싫어 밖에 나와 버렸다.” 어머니가 냉담하게 말했다. 신록이 울울한 앞산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에 한겹 시름이 실려 있었다. 그러더니 어머니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분 눈감으모 그만인 목숨, 모지고 질긴 게 명줄이라. 집도 절도 없이 울산으로 나와 내가 어린 너그 성제간을 데리고 미군부대 앞에서 걸식을 할 때, 그만 모자 셋이 같이 약이라도 묵고 죽어 뿔라고 결심도 여러 분 했건만 그래도 몬 죽고 살아왔지. 니 할메도 사무친 원한이 앞산만큼 높아 하눌님도 차마 박정하게 숨질을 못 끊는 모양 같고…….”
-김원일, 「미망」 『김원일 문순태 송기원』, 창비, 2013, 58쪽.  

위 인용문에서 살필 수 있듯이, 말년을 고부갈등으로 보냈던 할머니를 향해 어머니는 담담하게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어머니의 슬픔은 동시에 할머니의 슬픔이었고, 어머니의 고통 또한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고통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 소설은 인간의 말년이 그 이전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은 희생당하는 슬픔을 딛고 일어설 때 그 가치를 발한다는 진리를 웅변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아픈 역사도 역사요, 수치스런 역사도 역사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과거가 없는 미래 또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노인이 다 된 어머니와 할머니의 고부갈등 이야기를 통해 격변기를 살아낸 위 세대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의 삶에 감사를 표하는 헌사로 읽어낼 수 있다.  

장미영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문학비교학회와 한국여성문학학회, 토지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융복합시대의 교양 글쓰기』,『한국의 노인 담론』, 『실버를 골드로』, 『21세기 대중 취향과 미디어』, 『젠더와 번역』, 『다문화 사회의 이해』, 『스토리텔링의 이해』, 『새만금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과 문화산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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